열쇠뭉치를 손가락으로 쥔 채 소파에 팔을 걸치고 잠을 자는데, 그렇게 하면 잠이 깊게 드는 순간 열쇠뭉치를 떨어뜨리게 되고 열쇠뭉치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다시 의식을 차리게 되기 때문에 시간 감각을 잃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고, 깊은 수면 후에 느껴지는 몸을 처지게 하는 나른함을 사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사는 일도 무언가가 너무 깊어지기 전에, 열쇠뭉치 떨어지는 소리처럼 알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낮잠자는 포즈의 마눌님... 싫다고 그러는걸 화면처리하겠다고 약속하고 개제함 시에스타에 대해서 알만한 분들은 이미 그게 뭔지를 잘 알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후와 다음에 들어가서 검색을 일단 해 보았다. http://kr.ks.yahoo.com/service/ques_reply/ques_view.html?dnum=EAG&qnum=5837338&kscookie=1<?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
핵무기 경쟁과 냉전 종식에 있어 대화는 각별한 역할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몇 년 후, 그의 공식 비서였던 조지 슐츠는 구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냉전이 끝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망설임 없이 "레이캬비크"라고 대답했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가진 모임이 레이건 대통령과 처음으로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들은 주요 협의 내용이었던 군사 문제를 뛰어넘어 양국의 가치와 이상, 열망에 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고르바초프는 이 대화가 핵무장 경쟁을 중지시킬 만큼 충분한 신뢰와 상호 이해를 정착시켰다고 믿었다. 대니얼 안켈로비치의 'CEO 대화법' 중에서 (21세기북스, 13p)
대화는 사람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간부와 직원간에, 부서간에, 동료간에도 그렇고, 협력사와, 그리고 고객과도 그렇습니다. 반대로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증폭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나 싶지만, 1980년대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cold war)으로 핵전쟁의 위기속에서 지내야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수 십번, 수 백번 멸망시킬 수 있는 확실한 '보복능력'을 보유하고, "혹시 먼저 핵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지는 않나..."라는 걱정에 서로를 감시했습니다. '오해'라도 생겨 한쪽이 핵미사일 버튼을 누르는 날에는 끔찍한 핵보복으로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서 지냈었습니다.
그런 냉전을 종식 시킨 것은 바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대화'였습니다. 그들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났고, 양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진정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군사문제는 물론이고 양국의 가치와 이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이것이 핵무기 경쟁을 중지시킬 수 있는 '이해'와 '신뢰'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자가 비교한 '논쟁'과 '대화'의 차이점은 우리에게 대화의 의미를 알려줍니다. 논쟁은 정답이 있으며 내가 그 답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지만, 대화는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으므로 함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논쟁은 호전적이고 상대편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대화는 협력해서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논쟁은 목적이 이기는 것이지만, 대화는 목적이 공통의 입장을 도출하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논쟁은 잘못된 점을 찾아내려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 후 반론을 제기하지만, 대화는 이해를 목적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 후 자신의 의견과 비슷한 점을 찾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대화'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출처 : 예병일의 경제노트]
살다보면 간혹 대화 자체를 전투적으로 임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대화는 이해가 목적인 반면 논쟁은 이기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논쟁을 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참 어렵다. 그러나, 논쟁은 논리와 이성으로 싸우는 거기 때문에 나쁜게 아니다. 나쁜 건 논쟁의 선을 넘어 감정과 언어폭력으로 싸우려하는 거다.
"한글은 우수한 언어(문자)가 아니다. 한글은, 인류 역사상 아주 중요한 지적 작업 중의 하나이다. "
이 글은 영국의 아주 유명한 백과사전에 실린 한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합니다. 어느 백과사전인지는 확인 못해봤고, 몇년 전 TV강의에서 어떤 강사가 하던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한글을 문자 이상의 고차원적인 인류의 산물로 본다는것 자체가 한글의 우수성이 외국에서 얼마나 크게 평가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얼마나 깊게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한글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혹, 표준어에 안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 바랍니다.
한글이 혀의 모양을 따서 아주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건 다 아실겁니다. 그 외에도 한글이 우수한 점은 소비자 중심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즉, 만드는 사람 중심이 아닌 쓰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언어라는 거죠.
한글 이외의 문자는 단어를 발음하는데 있어 사전정보를 알고 있어야 발음이 가능하지만 (영어같은 경우 발음기호를 알고 있어야 발음을 할 수 있죠...안그러면 제멋대로죠.. 가령, person이라는 것을 읽을 때, 사람에 따라서 퍼손도 될 수 있고 페르슨도 될 수 있고 페르손도 될 수 있고 그렇다는 거죠..)
한글은 가나다라..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만 알면 모두 발음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하루만에 배울 수 있는 문자체계인 거죠. 이게 바로 세종대왕때 민본주의의 개념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답니다.
높으신 분들이야 한글같은 쉬운 언어가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훈민정음에서 나랏말쌈이 백성과 달라.. 여린 백성을 위하여.. 라는 글귀처럼 백성을 위하여 즉,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자이기 때문에 매우 쉬운 거라고 합니다.
또, 구어와 문어가 정확히 일치하는 유일한 언어랍니다. 말하는 음절과 글자가 딱 맞게 떨어지는 언어는 역시 한글뿐이라는 거죠. 영어로 book 이라고 하면 이게 몇글자로 읽어지는지 도통 알수가 없는데 한글은 책 이러면 한음절로 발음된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역시 우수한 문자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유엔에서 아프리카의 문자가 없는 원주민들에게 권하는 문자체계가 한글이라고 하네요.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뿌까띠뿔레 우까자뿔뽀까" 라는 요상야릇한 말을 표현하기에는 한글만큼 정확한 문자체계가 없다는 이유이지요.
또 한글은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록이 되어있으며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문맹율을 줄이는데 기여한 상을 주는데 그 상 이름이 바로 세종대왕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상을 아직 한번도 못받았다고 하네요. 왜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문맹율이 1%도 안되기 때문에 문맹 퇴치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겠죠!
언젠가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언어학자들의 학술회의에서 한글을 세계공통어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학자들은 한명도 없었다고 하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느 블로그에서인가 읽은 것 같은데, 어쩌다가 외국 친구들과 자기네 나라 문자의 우수성에 대해 논쟁을 펼치게 되었는데 'Macdonald'를 자기네 나라 말로 써보고 누가 더 비슷하게 읽는지를 해보자고 했답니다. 그러자 우리나라 사람이 한글로 '맥도날드'라고 쓰고 '맥도날드'라고 읽자 다른 나라 사람들 깨갱하면서 꼬리내렸다면서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 감사드리며 어깨으쓱했었다는 글을 본적이 얼핏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문자체계로서의 한글의 우수성과 동시에 우리나라말, 즉 한국어의 우수성에 대해 또 몇마디 할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참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그 이유인즉슨, 우리나라말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거죠. “가자미 냄비에 물을 잘잘 부어 살근살근 끓이고 졸졸 졸여서 노리끼한 고기를 보시기에 소복하게 담아서 괴괴한 달빛 아래에 사랑하는 님과 둘이서 술 한 잔 곁들이니 살살 목을 넘는 요맛이 달콤하기도 하다.” [퍼온글]
이런 표현을 글쓴이의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100% 전달하면서 외국어로 제대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가령, 빨갛다라는 의미에 대한 우리나라의 표현은 굉장히 많죠. 영어로는 red? redtic? 이거 말고 더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어로는 붉다. 빨갛다. 벌겋다. 붉그스름하다. 뻘겋다. 발그레하다. 새빨갛다. 같은 빨갛다는 말이지만 말마다 그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 각양각색이죠. 그래서 우리나라말이 배우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할때 상대적으로 제스쳐를 안쓴다고 하는데요 이유가 말로 해도 웬만한 뜻은 다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가 싶습니다. (저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 언어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30%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최소한 한글, 한자, 영어, 로마자를 쓰니까 피라미드로 보면 가장 상위에 속해있는 그룹이겠지요? (게다가 경상도사투리, 강원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만 나와도 세계적으로는 차원높은 언어적 유희를 즐기는 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시 한글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항상 한글을 써서 한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편한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눈 멀쩡한 사람이 장님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과 눈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비록 실제 쓰여진 역사는 백년정도밖에 안됐지만, 외국에서 더 알아주는 한글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다행인건 북한에서나마 한글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죠. 북한말이 웃기긴 웃기지만, 사실 그런 건 북한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일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말도 잘 알아야겠죠!
영어, 일어.. 하지 말자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싸워 백번 이긴다고 했으니 영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등 당연히 해야죠. 그러나 적을 알고 나를 모르면 안되듯이 우리나라말을 제대로 알고 영어.. 기타 등등을 하자는 것이지요.
문학파트. 첫시간입니다. ^^; 첫시간은 뭘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참 생각하다가~ 학교에서도 첫시간은 수업을 하지 않는 법이죠 . 저도 그래서 오늘은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시계바늘을 한참 되돌려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구석기인들은 무엇을 주식으로 먹고 살았을까요? 아마 반수 이상이 '수렵'이라고 생각했을것 같은데요. 수렵도 했겠죠. 하지만 그 '수렵'이라는 행위는 당시 원시인들에게는 대단히 힘든 식량이었겠지요. 뽀족한 돌..
요즘 아기 때문에 TV를 보기가 힘든 편이라 TV 시청 시간이 대폭 줄어서 뉴스조차 거의 신문과 인터넷으로만 보고 있는 형편입니다. 어제는 분유를 먹이는 동안에 잠시 KBS '미녀들의 수다'를 잠깐이나마 시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다른 문화에 대한 이른바 '미녀'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재미도 있고, 아직은 연예인과 다른 평범한 외국인으로서 바라보게 되어 자주 시청하는 편입니다. 아직은 서투른 한국어 실력들로 한국어를 이야기 한다는 재미도 있고,..
물론 모든 언어는 장점이 있고 또 단점도 있겠지요.
'음'님 말씀처럼 서로 다른 언어들간에 특정 개념을 번역하기 어려운 것은 서로간에 문화차이에서 기인하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문화 자체가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도 그 우수성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한글을 ㄱ, ㄴ, ㄷ.... 자음 과 ㅏ,ㅑ,.... 모음으로 구분하는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한글은 분명히 천.지.인 삼재를 본따서 만들었습니다.
즉, 첫소리 + 가운데소리(모음) + 끝소리로 이루어졌다고 보는게 더 정확합니다.
따라서, 한글의 경우는 첫소리(자음) + 닿소리(자음) + 끝소리(받침)으로 봐야합니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지금 표준이라고 일컬어지는 자판 자체가 문제가 있지요.
한글만큼 사랑스러운 언어도 없죠.ㅎ
친구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과에 다니는데 다른 어떤 언어보다 참 매력있는 언어라고 하더군요.
또렷한 발음상의 문제가 아니고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완벽히 읽을 수 있는 언어라고 말이죠.^^
그리고 처음 알았어요- 세종대왕상이라는 것.
좋은 것 배우고 가요.ㅎㅎ
'붉다'류의 어휘가 다양하다, 그래서 타언어로 번역하기가 어려운 언어가 한국어다라는 이야기는.. 글쎄요.. 각 언어마다 발단된 어휘 영역이 따로 있고, 그걸 번역하는 데 있어서는 어느 언어나 마찬가지겠죠. 알래스카인가, 에스키모인인가.? 거긴 눈(snow)에 대해 짓눈깨비, 우박, 함박눈 정도로 구분하는 한국어와는 달리 수많은 어휘가 눈을 지칭한다고 하더군요.
'한글은 우수한 언어가 아니다'는 말은 언어와 문자를 구별하려는 데서 나온 표현인 듯 합니다. 한글은 문자니까요. 언어엔 우열이 없는 거겠지요.
red 이외에 빨갛다는 표현 많다. 당신이 잘은 모른다고 써놓았지? 모르니까 없다고 생각하면 안되지. 한글의 우수성은 알겠지만 그래서 어쩌겠다는거야? 허구헌날 우리나라, 우리대한민국, 우리민족, 나라사랑, 우리조국 이런것만 생각할텐가? 왜 굳이 우리와 남을 구분지으려고 하는거야? 왜 우리것의 우수성만 최고이고, 남의 우수성은 칭찬하지 않는것이지?
red 이외에 빨갛다는 표현 많다. 당신이 잘은 모른다고 써놓았지? 모르니까 없다고 생각하면 안되지. 한글의 우수성은 알겠지만 그래서 어쩌겠다는거야? 허구헌날 우리나라, 우리대한민국, 우리민족, 나라사랑, 우리조국 이런것만 생각할텐가? 왜 굳이 우리와 남을 구분지으려고 하는거야? 왜 우리것의 우수성만 최고이고, 남의 우수성은 칭찬하지 않는것이지?
그 님이 컨트롤C+컨트롤V해서 가져오신 단어의 뭉텅이들은 '미술적'으로 '붉은 색 계열의 물감'들을 통칭하는 단어입니다.
'붉다'와 '선홍색','진홍색','옅은살구색'이 다르듯이 그건 정규 영어 어휘에 들어가는 말이 아닙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My hat is burgundy, My cheek is coral red이런식으로 그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쓰시는 거 봤나요?
글 전체 주제가 일관되지가 않네요 한글 문자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던가 하는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는 불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글은 문자체계로서 한국어와는 별개의 개념입니다.
그리고 글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객관성이 떨어지는 점이 아쉽습니다.
언어에 제스쳐가 적은 것은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더 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언어'도 못 하는 사람들이 30%라고 하고 우리는 한글,한자,로마자등을 쓴다고 하셨는데 그 것들은 '문자체계'지 언어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밑의 사투리 이야기는 다시 '언어' 이야기이군요. 게다가 우리나라의 방언은 특별히 다종다양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본어도 칸사이, 칸토, 도후쿠의 말이 상당히 다르고 (외국인도 금방 느낄 수 있을 정도) 중국은 거의 뜻이 통하지 않는 민난, 커쟈 등 '방언' 체계만 8개가 있습니다. 소수민족의 언어는 차치하고요.. 아랍어도 시리아랑 이집트랑 모로코 각각이 많이 다릅니다. 계급별로 다른 말을 쓰거나, 문어와 일상어가 다른 나라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만드는 사람 중심이 아닌 쓰는 사람 중심의 언어라는 표현은 상당히 모호합니다. 왜냐하면 언어 중에 만드는 사람이 있는 언어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요. 각 언어와 문자체계는 오랜 기간 쓰는 사람이 다듬어 온 것이고 프랑스어처럼 철자와 발음의 격차가 크다해도 이미 체화된 그 나라 사람에게는 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죠. 물론 글쓴이가 이야기하고자 한 바와 같이 한글은 철자와 발음이 잘 맞는 훌륭한 '문자체계'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말은 어법을 맞추기 위해 철자와 발음을 완전히 일치시키지 않고 있죠. (못 느끼셨을 수도 있겠지만 발음에 맞추자면 '사람이 산다'가 아니라 '사라미 산다'여야 하지만 그러면 오히려 의미가 불명확해지는 단점 때문에 한글맞춤법은 발음과 철자를 정확히 일치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 특히 받침문제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어려워 하는 부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발음과 철자의 일치에서는 스페인어가 매우 뛰어납니다. 정말 쓰는데로 읽죠. 'g'의 발음이 모음따라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완벽한 규칙성을 띄고 있어서 헷갈릴 일은 없습니다. 일본어의 '카나문자'도 뛰어나나 실제 사용시 일본어는 한자를 빼고 쓸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구요.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말을 '뿌까띠뿔레 우까자뿔뽀까'라 표현한 부분은 좀 보기 그렇습니다. 저 말은 글쓴이가 지어낸 말이니까요. 비하의 의도는 없었겠지만 글의 객관성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 하고요. 아프리카 언어도 스와힐리, 각종 반투계 언어, 사헬계언어로 그 계통들이 있고 한국어나 영어에 비해 전혀 '요상야릇'한 말이 아닙니다.
저도 한글은 인류사적 가치가 있는 훌륭한 문자체계라 생각하고 한글날을 하찮게 생각하여 공휴일에서 제외시킨 위정자들의 행태에 분노가 입니다. 그러나 한글이 좋다고 다른 문자체계나 언어를 열등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한국어에 최적화되어 있는 문자이고 문자라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자긍심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다른 나라 문자가 좀 답답해 보인다고 비교하여 으시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글의 가치는 남과 비교하고 '맥도날드'같은 걸 더 '영어'에 비슷하게 발음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한글은 그 특성상 어느 발음이나 잘 표현할 수 있지요.) 그 구성원리가 매우 과학적이고 한국인들의 언어 사용과 문자생활에 큰 편리를 주어서 그 발명 당시부터 컴퓨터 시대인 지금까지 한국인과 그 외 한글사용자들의 행복한 삶에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아닐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의 사용자인 우리 자신이 한글을 아끼고 발전시키고 기념하고 해야겠지요. 요새 각 지자체 로고나 간판들이 로마자로 도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한국어와 한글을 구분해서 글을 썼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글은 한국어를 표현하는 하나의 기호이지 않습니까?
글이 한국어와 한글을 분류해서 각각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식으로 전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테클은 절대 아니고요, 저도 한국어와 한글을 사랑하는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 아쉬운 면이 있어 몇 자 남깁니다.
토다는 김에 하나만 더 달겠습니다.
아까 '붉다', '불그스름하다' 같은 표현이 번역하기 힘들다고 하신 부분인데요..
('한글'이야기가 아니라 언어와 번역이야기입니다.)
우리 말이 형용사가 발달된 말인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에 딱 맞는 단어가 없다고 영어사용자들이 우리보다 색감이나 이런게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어권에서 색을 표현할 때는 그 색을 지닌 사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렌지색같은 것 처럼요. 색을 표현할 때 그냥 불그스름하다가 안되면, 저녁놀의 빛깔이라던가 낡은 프레스코 벽화의 바래진 붉은 색이라던가 이런 식으로 직유법을 통한 표현이 가능하죠.
단어의 유무가 표현의 정치함 간결함에는 영향을 줄 지 몰라도 인식이나 사고 자체의 불가능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언어권의 사회 문화적 요소에서는 그런 표현이 불필요하거나 발달하지 않았을 뿐이죠. 정확한 단어가 없어도 각 언어의 단어 범주 안에서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는 거진 표현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에스키모보다 눈의 종류를 나타내는 단어가 적다 하더라고 여러 눈의 종류를 구별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번역이 어려운 걸 까요?
위에 글쓴이가 예를 들은 표현은 시적인 표현, 언어의 의미 뿐 아니라 어감이 중요한 표현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 언어도 '시'는 제대로 번역이 안 됩니다. 시에는 운율이나 어감같은 요소, 기의(시니피에)가 아닌 기표(시니피앙)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진눈깨비'가 내린다는 표현과 '비와 비가 얼은 얼음 알갱이가 섞인 것이 내린다'는 표현은 그 느낌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평생 눈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그래서 '눈'이라는 단어가 없는 열대 나라 사람이 한국에 유학왔다가 진눈깨비를 보고 본국에 돌아와서 그걸 설명하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언어로 '진눈깨비가 내린다'라는 표현을 번역하려면 어떨까요?
기술서적보다 문학작품이 번역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언어의 기표적 특성 때문이지 단어 자체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번역문학이 받아들여질려면 독자들이 저자의 문화에 대한 이해 정도가 높아야 합니다. 그래야 저자가 글쓰면서 나타내려 했던 것들이 번역에 의해 많이 소실되었다하더라도 다시 독자가 재구성할 수 있지요.
한국번역문학이 성공하려면 다른 나라의 독자들이 한국의 문화에 친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네 글로 출판해도 이해하기 힘들죠.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 중에 몽골문학작품 '맑은 타미르강'이 있습니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읽어보시면 상당히 어려우실 겁니다. 장면이 상상이 잘 안되기 때문이죠. 몽골이라고 TV에서본 것은 대초원 아니면 현대화된 울란바타르일텐데, 책의 무대는 현대화 이전 1920년대 몽골의 도시(또는 거대한 천막집단?)이거든요. 바로 그런 문제점, 우리 문화가 아직 잘 소개되지 못 했다는 점이 향토색 짙은 한국 문학이 외국에서 사랑받기 힘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붉다, 불그스름하다 등의 표현의 과부족 자체가 번역 상의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독자가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지식이나 어감, 운율같은 그 말 자체의 느낌은 어느 언어에서 어느 언어로 옮기더라도 해결할 수가 없다는 거죠.
'우리말은 원래 표현 자체가 번역이 안 돼'라는 것보다는 우리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친숙하게 만들어 '청국장 냄새'라는 말이 'smell of chunggukjang'하고 번역된다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냄새를 생각하고 어깨를 움찔하게 만들게 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중학생이 쓴 글인줄 알았습니다. 글 자체가 논리 정연하지 않고, 언어와 글자의 개념도 제대로 정립된것 같지 않으며, 막말로 하자면 '어디서 줏어들은' 내용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맥도날드 내용도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사투리는 왜 추가 했는지... 영어로 아는 단어가 Red밖에 없는것 같군요.
뭔가 그을 적고 싶은데, 글 쓰는 실력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도 있고 알고자 하는 의지도 있는것 같습니다. 고3 논술 초급반 들어가세요. 3개월만 배워도 글쓰는 실력이 몇배는 좋아질 것입니다.
너무 기분나빠하지 마세요. 인터넷이란 공간이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있기에, 저도 글쓴이 님의 글을 읽고 저의 생각을 적은것입니다.
귀담아 듣겠습니다.
근데 몰라서 그러는데 블로그뉴스에 실릴만한 좋은 글의 요건이 뭔지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게시판에나 쓸 글은 무엇인지요?
제가 또 게시판에나 쓸 글을 블로그뉴스에 올려서 폐 끼칠까봐 걱정돼서 말이죠.
근데 현동규 님은 주로 어느 게시판을 이용하시는지요?
알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왜 한글을 항상 영어랑 비교 하는지요? 영어를 한글 또는 한국어로 정확히 발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수한 언어가 되는 것일까요? 제스추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가 문제이기보다 그 사람들의 문화가 그렇게 만든 경향이 크다고 보는데요.
저도 한글을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님이 쓴 글은 너무 신빙성이 없네요. 확실한 자료도 아니고 "카더라" 통신은...그다지.....
싶었는데, 왜 이리 논쟁들이신지..;;
영어가 세계 공통어가 되어버린 탓에 빛이 바랜 느낌이 있지만,
역시나 한글이 최고라고 봐요.
기원과 제자과정이 정확히 알려진 문자는 한글 뿐입니다.
2개국어, 3개국어를 해야 하는 고충도 감내할 만큼 값진.. 후세에 길이 남을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이죠.
우리글의 우수성이나 한계성에 관한 자잘한 일화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주류에 편승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한글을 등한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거죠.
다른 건 다른 분들이 다 말씀하셨고....
문자가 없는 아프리카언어를 글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자가 한글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한글로 표현이 안되는 발음이 무진장 많습니다.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할 때 이 똑딱을 혀로 차는 소리같은 건 쓸 수가 없잖아요.....
동남아 오지에 한글을 보급하고 계신 분들이 현지화시킨 한글을 보면 우리가 전혀 읽을 수 없더군요. 아마도 한글 표기법에서 초,중,종성에 꼭 있어야 글자가 되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가가 없는 초성 "ㅇ" 이나, 음가가 없는 모음으로 쓰이는 "ㅡ" (영어 dog를 도그로 표기할 때의 "ㅡ"....등등....우리말과 현지말이 맞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또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의 주민들이 알파벳으로 된 문자를 받아 들일 경우엔 비슷한 알파벳을 쓰는 여러나라 언어된 다른 책(훨씬 많은 지식과 정보가 쌓여있는...)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운데, 한글로 현지어 문자화를 하다 보면 나중에 다시 복잡한 번역 과정을 거쳐야 되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사실 됩니다.
우리 한글이 자랑스러운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전수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 더 생각한다면.......어떤게 진짜 그 사람들에게 좋은 것일까....그런 생각이죠.
암튼 한글의 체계는 참으로 과학적이어서, 1시간 정도만 설명해줘도 초등학생도 따라 "그릴 수 "있는 놀라운 발명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한글의 놀라운 창조성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창조적인 글쓰기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는데....뭐, 매뉴얼화된 논술 시험, 고득점 비법 글쓰기....이런 것 밖에 못 배우는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고.....
글이..일관성이없어..- -;;;;
게다가 북한말을 본받아야한다고 해놓고
바로 밑에다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건 왜 갖다 붙이는지..
이것도 한자로 표현된것이니 북한처럼 완전히 한글로 풀어쓰지 왜
그냥 쓰시나..그리고 사투리는 다른언어인가? - -;;
난감해지는 글..
그리고 리플중엔 왜이리 국수주의적인;;;
무조건 한글이 최고라는 분이 왜이리 많은지..
흔히 한국어가 알타이어족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알타이어족이라는 개념 자체에 논란이 많아서 옳다고 할 수 없다.
한국어의 뿌리를 알기 위해 한국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북방 유목민뿐만 아니라 의외로 남방계(동남아죠)가 섞여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중에 남방계임을 나타내는 특정 유전자가 약 30% 정도 있으며, 북방계의 특징인 천생신화와 남방계의 난생신화가 공존한다.
특히 일본어의 기원을 공동 연구하는 한일 학자가 나온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그들에 따르면 고대 한어는 크게 대륙한어(고구려), 반도한어, 열도한어(일본)로 나눌 수 있으며 대륙한어와 일본어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실제 일본 고대사에 나타나는 야요이인은 인류학상 특정시기에 유입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이들로부터 벼농사와 언어가 전파되지 않았나 한다. 이들의 골격은 기존의 열도에 존재하던 인종과 뚜렷이 구별되며, 사용하던 도구는 같은 시기에 반도에서 사용된 것을 그대로 가져온 듯 동일하다고 한다.
에고, 볼 때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많아서 흥미롭게 봤는데 막상 쓰려니 기억이 하나도 안나네요. 쓴게 아까워서 지우진 않을래요^^
문자가 없을 땐 우리 선조들은 중국의 한자를 가지고 공부를 하고 시를 썼죠.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반만년 고유의 문화가 우리글로 이루어진 기간은 극히 짧다니 아이러니하죠? 한편으론 세종의 업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 수 있죠.
우리것이라면 무조건 최고라는 식의 생각을 참 싫어합니다만, 한글은 아무리봐도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위에 논란이 되다시피 한국어가 이렇게 이쁜 문자로 담기에 부끄럽지 않은 말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요즘의 한글 파괴나 영어 광풍을 보고 있자면(정부정책도 한숨나오지요) 걱정이 됩니다.
한 문화권의 언어를 또 다른 문화권의 문자로 "거의" 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끄도나르도나 맥도날드나 외국인이 못 알아 듣는건 마찬가지이고요.
비슷하게 먹다널, 믁다널, 맥다널이라고 표기해도 음의 높낮이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맥도날드는 액센트가 명확하니까 괜찮지만 문장내에서요)
요즘 상하이어를 배우는 중인데 한글로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 비슷해보이는 미묘한 발음들을 어떻게 소화할 지 난감하더군요.
"아"도 아니고 "오"도 아니고 중간쯤 되나보다 하고 넘어가면 그 중간에 중간쯤 되는 것 같은 것이 또 나오고요.
물론 한글이 알려진 어떤 언어보다 과학적이고, 훌륭한 건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모든 걸 비슷하게라도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회의적입니다.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한글이 아니라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혜례본입니다. 즉, 내용물인 한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록물 자체에 의미를 두는 거죠.
2. 한글이 모든 언어 발음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지금의 한글은 창제 당시의 훈민정음보다 삭제된 것이 많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적습니다.
3. 유네스코에 세종대왕상이 있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해서 제정했고 상금 전액을 한국정부가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4. 2008년 한국의 문해자 비율은 약 99%로 세계에서 상위권이며 15위 정도입니다만 실측값은 아니고, 1966년 이후로 문해율은 조사하지 않습니다만, 1945년 광복 당시에는 문해율이 22%에 불과했고 78%는 글을 못읽었습니다. 2002년 조사로는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중 24.6%는 초등학교 6학년 생 수준의 읽고 쓰기를 못합니다. 2005년 조사로는 문해율 97.9%로 세계 47위였고요.
같은 로마자를 쓰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문맹율의 차이가 있으며 비교적 글자의 효율이 떨어지는 일본에 문맹율이 낮은 점을 고려하면 글자체계가 어렵고 쉬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초등교육에 힘을 쓰고 있느냐의 측면이 더 강합니다.
5. 2001년 한글날에 MBC에서 라후족에게 한글을 보급한다는 내용의 "한글, 라후 마을로 가다"라는 다큐를 방송했습니다만, 이 방송은 연출된 것이고 이미 로마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새로운 문자가 필요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04년 경북대 교수가 동티모르에 테룸어의 한글표기 체계를 도입하려고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역시 로마자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딱히 도입할 이유도 없고 이러한 주장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연구결과나 실제 사례도 없습니다.
6. KBS에서 96.10.9일 방송된 프랑스 학술대회는 세계 언어학자들의 학술대회가 아니라 제2언어로서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는 학자들(주로 한국인들)의 회의였습니다.
한글로 표현 가능한 글자가 11,172개라고 한다. 그렇다면, 두글자의 조합의 경우의 수는?
11,172 * 11,172 = 124,813,584 (대략 이렇겠군...)
그렇다면, 세글자 조합의 경우의 수는?? 확률계산 하는 방법이 살짝(?)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큰 숫자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책 하나가 나오기까지의 글자배열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울텐데 이 조합의 경우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냥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라는 확신에 찬 상상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지금까지 수많은 글과 음악들이 존재해왔다고 해서 (또는 선점했다고 해서) 고갈된 우물처럼 더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우물이라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끝이 없을 깊이의 우물인 것이다.
바둑도, 인류가 있어옴으로 똑같은 바둑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만큼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바둑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과연 세상에서 가장 큰 숫자라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는 괴물 숫자 '구골 플렉스'보다 클까? 안클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진다. ※ 구골이 10의 백제곱, 구골 플레스는 십의 구골제곱
구골플렉스 : 10^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큰 숫자를 요 조그만 공간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신기하네.)
* 구글도 구골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블로그를 포함해서 엄청난 글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재이지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 비슷한 글은 있을지언정 똑같은 글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결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글쓰는 것도 창작을 통한 예술활동이 아닐까 싶다.
엑셀에서 나오는건 이미 글꼴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글꼴은 등록이 되지 않아서 안 나오지요.
예전에 '똠'이 입력이 안되던 예가 그 예입니다.
지금도 입력 체계 만으로 본다면 '알' 'ㄹㄴ' 으로 된 받침은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pc 자체가 외국의 것이니 완벽한 글자 표현에 문제가 있는것은 당연하겠습니다만,
그 옛날 군부시절 멍청한 어용과학자들이 지금 글자판 만든것을 표준이라 일컫는 세태를 보면 웃기지요.
경영자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일곱가지 쌍기역자론이 있다. 쌍기역자로 시작하는 일곱가지 단어가 경영자 능력을 단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곱가지 잣대는 '꾼-꾀-끈-끼-꿈-깡-꼴'이다.
꾼은 전문성을 칭하고,
꾀는 머리를,
끈은 인맥 및 대인관계를,
끼는 소질을 말한다.
꼴은 최고경영자 이미지에 어울리는 모양새와 인품을 의미한다.
깡은 집념을,
꿈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느냐를 뜻한다.
이 일곱가지 쌍기역은 비단 경영자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의 인생의 경영자로 본다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내용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몇가지 ㄲ을 가지고 있을까요?
가만 보면, 꾀를 제외하고는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것들이네요. 꼴은 외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품과 모양새이니 말입니다.
암튼 우리네 인생 꼴 좋게~가 아니라 꼴 멋있게들 살아요!
마지막으로 팁 하나! 형광펜 찌익~ 제가 터득한 이거 외우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우선 자소 단위로 가장 작은 '끼'를 먼저 외운 다음에, (반드시 맞는 건 아니지만) 자소 단위로 하나하나 더해가면서 외우는 겁니다. 그러면 '끼-꾀-깡-꼴, 한숨쉬고, 끈-꾼-꿈'이 되겠죠.
버리고 바꾸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마음 아닐까. 미련이나 불필요한 욕망처럼 ‘짐 되는 마음’을 버리고, 버림을 위한 마음가짐을 갖기란 쉽지 않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 씨가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지혜를 전한다. (편집자 주)
당신은 잘 버리는 사람인가?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필요 없는 오래된 자료, 책, 편지, 일기장, 잡동사니 등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자취가 묻어 있는 것을 버린다는 건 내 일부를 지워내는 것 같아 아쉬움을 준다.
이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떤 감정을 버려야 함에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 대상에 대한 친밀감이나 나름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남성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귀어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처가 깊고 불행한 여성들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처 있는 사람들과 만날 때 느껴지는 정서적 친밀감이 크기 때문이다. 우울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우울한 여성들과의 만남 속에서 어머니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편안해하고 오히려 행복한 여성들에겐 이질감을 느꼈다.
이는 학대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종종 보호시설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즉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것 중엔 그것이 좋든 싫든 ‘자기화(自己化)’된 게 많다. 처음엔 ‘불편한 옷’이었지만 나중엔 ‘자신을 이루는 피부’가 돼버린 셈이다.
하지만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병이 된다. 과실나무를 기를 때 일정 시기가 되면 잔가지를 솎거나 잘라내는 가지치기를 한다. 나무의 골격을 바로잡고 실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다. 쓸모없이 굵은 가지, 병든 가지, 제멋대로 자란 가지 등을 잘라내면 나무는 열매를 잘 맺고 더 오래 산다.
나무만 그럴까. 삶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태어나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왕성하게 신경망을 형성해간다. 하지만 12세 무렵부터는 유용한 신경망만 남겨두고 불필요한 시냅스는 잘려나가는 ‘뇌의 가지치기’가 시작된다. 만일 이러한 가지치기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과중한 감각발달과 입출력의 오류에 시달려 정신적인 오작동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유능한 사람이란 많은 뇌 회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불필요한 신경망을 제거함으로써 집중적인 뇌 회로를 갖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재능이나 강점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다익선(多多益善)보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다.
버리려 애쓰지 말고 버리기 앞서 채우기 조절하라
“먼저 자신이 무슨 씨앗으로 심어졌는지를 알자. 그 뒤에 비전이나 사명을 세워 불필요한 관심사를 잘라내라.”
결국 버리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한 수 위다. 채우는 것은 욕망으로 되지만 버리는 것에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컨대 마음을 버리는 건 쉽지 않다. 걱정이나 불안은 더욱 그렇다. ‘그래, 안 좋은 생각은 하지 말자’ ‘사람 앞에서 긴장하지 말자’고 수없이 되뇌어보지만 정작 버리려는 생각 자체가 우리를 더 괴롭히고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버릴 것인가.
첫째, 버리려고 애쓰지 마라. 애초 버릴 수 없는 것도 있다. 예컨대 인간의 양면적 본능, 타고난 기질, 부정적인 마음 등 그 자체를 버릴 수는 없다. 이러한 본성은 되레 버리려고 할수록 확대되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조절되거나 다듬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내성적인 성격을 버리고 외향적으로 바꿀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인간의 본성이나 양면성을 인정하지 않고 제거하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할 뿐이다.
대신 원하는 것에 진심으로 마음을 둠으로써 원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덜 쓸 수 있다. 무엇이 됐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버리고 싶은 마음과 행위가 생겨난 이유와 긍정적인 의도를 파악해서 소망으로 바꿔야 한다. ‘나는 왜 불행할까?’라는 문제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둘째, 버리기에 앞서 채우는 것을 조절하라. 현대인들은 신체 비만뿐 아니라 정보 비만(information obesity)에도 시달린다. 수많은 경로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 때문에 뇌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집어넣지 않으면 처진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정보 비만은 우리의 기억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선택능력과 실행능력을 저하시킨다. 적정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이 비만관리의 핵심이듯 우리 역시 업그레이드 강박증에서 벗어나 정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을 정해보고, 무언가를 천천히 즐기는 시간을 마련하라. 이러한 휴식은 성공한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나 목표 없는 사람들의 게으름이 아니라, 몰입과 생산성을 높이는 효율적 행위다. 휴식은 남는 시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재창조(recreation)의 시간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셋째, 삶의 중심을 단단히 한 뒤 마음의 가지치기를 하라. 버리라고 무조건 다 잘라내라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남겨두고 주변을 가지치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비전’이나 ‘사명’이라는 인생의 큰 가위가 필요하다.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무슨 씨앗으로 심어졌는지를 알자. 그 뒤에 비전이나 사명을 세워 불필요한 관심사를 잘라내라. 가지치기, 버림의 목적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버리는 이유는 삶에서 진심으로 중요한 것들을 보호하고 달콤한 열매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끝)
(출처 : 주간동아)
버리는 것이 채우는 것보다 한 수 위다! 무언가를 벌리기 전에 무언가를 버리기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인데, 버려야 할 그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선택이란 포기할 것을 정하는 건데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외면할 수 없는, 해서도 안되는, 까다롭고도 어려운 문제로소이다!
2006. 7. 27. 말 잘하는 입보다 잘 들어주는 귀를 가진 사람이 좋다.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좋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 좋고, 넘어진 사람 일으켜주는 따듯한 손을 가진 사람이 좋다. 말할 때 미소지으며 눈을 바라보는 사람이 좋고, 아는척하기보다 알려주려고 하는 사람이 좋다. 옳은 일에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좋고, 그른 일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좋다. 계산기같은 사람보다 펜에게 자리를 내주는 백지같은 사람이 좋고, 생각보다 말이 먼저인 사람보다 말보다 생각이 먼저인 사람이 좋다. 말에 책임이 없는 사람보다 책임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좋고, 이해를 오해로 헝클어놓는 사람보다 오해를 이해로 푸는 사람이 좋다. 진심없는 칭찬의 말보다 진심어린 충고의 말을 해주는 사람이 좋고, 검지나 중지를 많이 쓰는 사람보다 엄지를 많이 쓰는 사람이 좋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에는 인간다운 사람이라는 얘기일텐데... 사람이 인간다우기가 참 쉽지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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